Black Cow

아직도 흑우를 안키우는 분이 계십니까? 화면을 터치하여 떨어지는 경험치, 코인, 장비등의 보상으로 흑우를 키워보세요. 다만, 같은 보상을 연속으로 주면 흑우가 실망합니다. 흑우 등에 적힌 ARPU는 ‘유저당평균수익’을 말하며 흑우를 잘키우고 있는지 알수 있는 척도가 됩니다. 목표 ARPU 100$을 달성해서 부자가 된 기분을 맛보세요.

Is there anyone who still does not raise black cow? Touch the screen to release the rewards such as experience, coins, equipment, etc. However, if you give the same compensation in succession, He will be disappointed.  ARPU, which is described as “average profit per user,” is a measure of whether you are raising your cow well. Achieve your goal ARPU $ 100 and enjoy the feeling of being rich.

 

Brothers in Arms : A Company of Heroes Machinima

2011년에 Company of Heroes의 리플레이 데이터와 인게임 에디터로 만들어 업로드한 Machinima music video예요. Dire Straits 의 음악이 좋아서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만들어 봤었는데 제가 올린 영상중에서 제일 조회수가 많았던 것 같아요. 한때 이런 게임영상 콘텐츠 많이 만들었었는데 요즘은 게임플레이 영상들이 많이 올라오고 인기 있죠. 오래간만에 업로드 해봅니다.

About: Sati

저는 명상을 할때 코로 공기가 드나드는 그 느낌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내 집중하던 마음은 사라지고 다른 생각에 빠져있는 자기를 발견하고 놀라고는 합니다. 선생님들은 다른 생각이 난다고 해서 자책할 필요없이 그냥 마음을 호흡으로 다시 돌리면 된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저의 명상은 집중, 다른 생각, 알아챔, 다시 집중의 반복입니다.

이번엔 그런 과정을 간단한 게임으로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습니다. 화면을 클릭해서 게임이 시작되면 화면의 밝기가 변하며 호흡이 진행되고 때때로 잡념이 아상(我相)처럼 떠오릅니다. 그 변화는 미묘해서 언제 떠올랐는지 알기 힘드니까 잘 집중해서 보다가 아상(我相)이 떠오르면 너무 늦지 않게 화면을 클릭해서 다시 명상으로 돌아가 주세요. 게임의 제목인 ‘사띠’는 빠알리어로 ‘깨어있음’ 혹은 ‘알아차림’을 뜻합니다. 알아채기에 성공하면 반응할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점점 어려워집니다.

이 게임은 저의 자기표현이지 명상의 경험을 재현하거나 대신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참고해 주세요.

When I meditate, I concentrate on the air flows into the nose.
However, My concentration disappears and I am surprised to discover that I am in another thought. Teachers say that you can just turn your mind back to breathing without having to blame yourself for having another idea.

So my meditation is repetition of focus, another thought, mindfulness, focus again.
This time, I thought I could make it as a simple game.
When the game is started by clicking on the screen, the brightness of the screen changes and the breathing progresses. Sometimes another thought rises like a shape of Ego.

Because the change is subtle, it is hard to know when it came to mind. When you see the shape of Ego while concentrating, please click the screen before it’s too late.
More you succeed you will have less time to respond, And it makes harder to get higher level.

This game is my self-expression, not for conveying or substituting the experience of meditation. please note.

By the way, ‘Sati’ means Mindfulness or Awareness in pali language.

스팀 세일과 게임 쇼핑의 즐거움

https://store.steampowered.com/

스팀상점 화면. 2018년 6월 22일 캡처.

시드마이어*의 말처럼 게임이 흥미로운 선택의 연속이라면 쇼핑 역시 게임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 거기다 게임 쇼핑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랴. 오늘은 스팀 여름 세일이 시작되는 날이다. 이제 나는 미리 설정한 예산 3만원을 가지고 흥미롭고도 고통스러운 선택의 연속을 즐기려 한다. 정해진 예산을 가지고, 셀수 없이 많은 게임들 중에서 내 라이브러리로 들일 게임을 고르는 일은 어찌 보면 고통일수 있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택한 도전이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려면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으로 행한 지난 결과를 검토하며 만족도를 체크하는 등의 반복적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스스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끄러운 부분을 발견하고 씁슬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아재처럼 게임에서도 뭔가 의미나 감동 같은 얻을 거리를 찾는다든지, 반드시 해봐야할 게임이라는 의무감에 샀는데 너무 개념이 어렵고 고생스러워 현실적으론 몇 번 켜보지도 않았다던지 같은 경험들이다.

내가 게임을 고르는 기준을 주저리 주저리 적어보면 이런 것이다. 외국어 공부에 도움이 될 것(농담이 아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과 관련성이 있을 것. 취향도 아니고 가고자 하는 방향도 아니지만 시야를 넓혀주는 게임일 것. 미학적인 성취가 있을 것.

모호한가? 더 모호한 조건들이 있다. 이런 게임은 사지 않는다는 특정 조건이다. 의미없는 레벨업 그라인딩 게임. PVP를 반복시켜 의상, 악세서리, 칭호들을 리워드라고 공급하는 게임. 8비트 감성이라고 옛날 게임 추억팔이 하는 유사 옛 게임 이다. 웃기는건 게임을 구입할 때는 뇌가 멀쩡해서 논리적 고민을 한 후에 바람직한 게임, 소위 말해 지적인 게임, 내가 말한 조건에 맞는 게임을 사지만 실재로 플레이 할 때는 일과가 끝나고 이미 지쳐 있는 상태인 만큼 골치아픈 게임 보다 내가 사면 안된다고 생각한 그런 게임들을 찾아서 플레이 하게 된다는 점이다. 맥주한잔 걸치고 전두엽을 마비시킨 후에 의미 없는 PVP 레벨업을 하거나, 싸구려 추억팔이 게임들을 굳이 찾아서 하며 시간을 보낸다. 아마, 영화에서도 비슷한 패턴이 있었던 것 같다. 예술적 가치가 있다고 칭찬하던 영화와 시간이 나서 아무 생각 없이 고른 영화가 일치 하지 않는 것 처럼.

그때나 지금이나 생각과 행동의 일관성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 듯하다.

 

*시드마이어 : ‘문명하셨습니다’라는 유행어를 만든 중독성 강한 전략 게임인 ‘문명’시리즈의 게임 디자이너. 그 외에도 ‘알파센타우리’, ‘파이러츠!’, ‘레일로드’등 수많은 히트 전략게임들을 만들었다.

게임이 유료라니 사기입니다!

(제목은 나리디님의 블로그글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이번달 소니에서 나눠주는 PSN 무료게임은 XCOM2다.
나는 아직 구입하지 않은 게임이라 기쁘기도 하고 놀라기도 했지만 최근 소니나 MS에서 자기네 회원들에게 다달이 나눠주는 무료게임들의 면면을 보면 이런 유명타이틀의 무료배포는 도도한 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바야흐로 모바일에 이어 대규모의 PC나 콘솔 게임 하는데 돈이 안드는 시절이니까.
나온지 1년이 안되는 AAA급 대작게임들도 20~30% 세일을 흔히 하고, 스팀, 오리진, GOG, 험블번들등 플랫폼들은 점점 자주 무료 게임을 배포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처음 나왔을 때 가격이 60불 상당의 풀프라이스 게임이다. 그외에도 그린맨, SCD등 온라인 리셀러들은 서로 트래픽을 끌어들이려 경쟁적으로 파격세일이나 무료 게임들을 마구 뿌린다.

이제 무료 게임만 찾아도 게임 라이브러리는 늘어나고, 세일기간을 이용하다보면 큰돈 들이지 않고도 PC나 콘솔에 넣어둘 게임은 그야말로 넉넉하다.

만약 누군가가 어떤 게임의 팬이라면 그 게임이 처음 나올때를 기다렸다 정가를 주고 구입하겠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고서야 정가로 사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수 밖에 없다.

규모와 여유가 있는 개발사나 퍼블리셔는 나름의 이익을 위해 이런 전략을 선택한다.
그런 여유가 없는 소규모 업체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쩔수 없이 따라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헛웃음이 나올 상황이 아닐까 상상한다. 나도 서툴지만 어쨌든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 보면 수십, 수백억의 자본이 들어간 게임이 무료로 풀리는데 일개 개인개발자의 게임에 어떤 가격을 매겨야 될지 당황스러워 진다.

제러미리프킨이 말한 한계비용제로의 법칙이 모범적으로 실현되고 있는 영역이 바로 게임 시장이 아닐까.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상용 게임엔진 덕에 개발에 필요한 비용과 기술적 난이도가 줄어들면서 게임을 만들수 있는 사람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물리적 패키지 대신 온라인 배포가 늘어나면서 유통비용또한 최소화 되니 게임의 가격은 제로에 점점 가까워 지고 있는 것 같다.

무료라고 붙혀진 가격이 그 게임으로 벌어들이는 돈이 없다는 이야기는 당연히 아니다. 플랫폼 홀더들은 회원수를 늘리기 위해서 제작사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무료로 배포할 권한을 얻을 것이며 다른 유통플랫폼이나 리셀러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네들 회원수와 트래픽 확보를 위해서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러한 기업들의 전략적 선택이 일반 소비자들로 하여금 정가대로 게임을 살 이유를 점점 없어지게 만들고, 이런 현상이 게임의 가치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쉽게 유추 할 수 있다. 우습게도 대형 개발사이자 퍼블리셔인 EA는 자기들이 게임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일정 %이하로는 세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적이 있었는데 결국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이는 게임의 가치는 지키고 싶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10년, 20년전을 돌아보자. 인기 콘솔게임 하나 살때 당시 돈으로 7~8만원장도 였는데 화폐가치의 변화를 고려하면 게임하나에 요즘 돈으로 15만, 16만원 정도였다. 심지어 화제작의 경우엔 10만원이 넘는 게임도 종종 있었다. 부르는게 값이라는 말 역시 자주 쓰였다. 어떻게 사람들은 게임 소프트를 소유하기 위해 기꺼이 그런 돈을 지불했을까? 당연하게도 그 게임을 사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돈을 기꺼이 지불할만큼의 문화적 심리적 가치를 지녔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와 같은 종류의 경험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가질수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체제가 있었다면 원래 가격보다 더 비싸게 게임이 거래되는 그런 현상이 만연하지 못했겠지만 그런 현상이 지속되었다는 것은 대체제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물론, 게임 가격의 문제는 당시의 기형적 유통방식에서 오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 또한 수요가 없다면 이루어지지 못했을 현상이다.)

수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해야 만들수 있던 게임을 만들수 있었던 시기에는 당연히 게임이 귀했으며 그중에서도 잘만든 게임은 더더욱 귀했으니 그만큼 높은 가치를 인정 받았으리라.

기술발전으로 인해 게임 개발의 문턱이 낮아진 점과 온라인 유통으로 인해 관리 비용이 줄어든 점도 있지만,
또한 게임 업계 자체가 급속히 산업화 되면서 제작사의 규모가 커지고 이익을 극대화 하기 위해 헐리우드 영화 시스템이 그랬던 것처럼 흥행의 공식을 만들고 인기 시리즈를 재탕, 투자되는 리소스의 재활용하여 마케팅 일정에 따라 컨베이어벨트 식으로 게임을 ‘생산’하는 방식 역시 게임의 가치 변화에 관련이 있다. 게임은 대체불가능한 어떤 즐거움을 주는 신기한 것에서 사탕이나 과자처럼 공장에서 만들어 내는 일반 기호용품이 되어가기 때문이다. 사탕이나 과자는 특정제품이 없으면 다른 걸 먹을 수 있는데 게임도 그렇게 변해간다.

나보라는 ‘게임의 역사’에서 초기의 비디오 게임들은 제품보다는 해커들의 유희적 탐구의 결과물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수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탐구을 시도 하다보니 게임이라는 가치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예를 들어 공업용 계측기기인 오실레이터를 가지고 테니스 게임을 만들기도 했었는데 만약 회사에서 그런일을 하다가 들켰다면 시말서 쓰고 쫓겨난데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보면 그런 다소 무모한 일들이 신기함이라는 것. 대체불가능한 즐거움이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는 점을 상기하고 싶다. 이후, 게임은 산업화 모델을 따라서 부흥했다가, 문화적 가치와 자본주의 논리의 불협화음이 만들어낸 아타리사태를 겪었지만 이후 닌텐도에 의해 게임이 주는 즐거움의 가치는 이어졌다.

나는 지금처럼 기존의 게임에 대한 정의와 가치에 대한 감각이 다소 흔들리더라도 이것이 아타리 사태 같은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지는 않을 것이라 보는 쪽이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 더 많고, 만드는 사람이 더 많고, 연구하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이렇게 게임에 관련된 수많은 사람들은 어떤 형태로든 게임을 유지 발전시킬것이다. 게임은 더이상 신기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생활의 일부, 삶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가 게임이라고 이름을 붙혀서 그렇지 문학이나 음악, 영상 처럼 인류가 스스로를 표현하고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새로운 도구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한 도구가 어떤 위기를 겪는다고 해서 약화되거나 사라지지는 않을것임은 당연하다.

나처럼 게임을 비싼 돈 주고 사던 사람은 변화때문에 당황 할수도 있다. 요즘 게임은 타락했다고 떠들수도 있다. 하지만 게임을 만들고 연구하는 많은 이들은 새로운 수익구조, 사회에서의 새로운 역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면서 살아남을 것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것이 이전에 생각하던 게임과 달라져도 괜찮다. 어차피 게임은 유희적 탐구심에서 태어난 것이지 어떤 모종의 가치나 형태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 진것이 아니니까.

 

루둠데어 실패담

일요일 오후. Ludumdare 41 행사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뒤늦은 시간에 한번 참여해보기로 생각했다.
결론 부터 말하자면 결국 완성을 못했는데 거기까지 가는데 이런 과정을 겪었다는 점을 적어둔다.

주제는 ‘어울리지 않는 2개의 쟝르를 합치다.’ 였다.
나는 만들기 쉬운 플랫포머와 RTS를 결합해서 적들을 피해 맵을 뛰어다니며 자원을 모은후, 공장으로 가져가 그걸로 무기를 만들어 싸우는 흐름을 생각했다. 플랫포머 액션에 약간의 전략성을 겸비하면 색다른 재미를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였다.

이전에 겪은 경험이 있어 무조건 만들기 보다 재미요소와 구현사항에 대해 키워드를 적고 가능한 범위의 작업리스트를 정리했다. 그리고, 더 이상 문서로만 진행하기 어려운 단계가 된듯하여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패턴으로 움직이는 적을 피해 플랫포머 이동 메커니즘을 만들고 자원을 모아서 공장으로 가져가면 공장에서 일정 시간 경과후 아이템이 나오는 흐름까지 금방 만들어서 테스트를 해보았다.

그리고는, 내가 제대로 하는 것이 맞는지 걱정되어 작년의 루둠데어 게임들 영상을 보았다.
영상에서 나온 게임들은 확실히 뭔가 달랐다. 가장 먼저 느낀 부분은 작은 게임이지만 플레이의 단계가 확실히 보였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용자가 스테이지의 흐름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메커니즘을 알게 되고 그 지식을 활용해보고자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잘짜여진 사용자 경험의 흐름이 있었다.

내가 만든 게임은 너무 불친절하고 흐름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터라 거기서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몬스터를 피해다니며 자원을 모으고 그 자원으로 아이템이나 무기를 만들어 내는 과정을 레벨로 디자인 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몬스터의 추가 유형에 대한 필요성과 그런 유형과 아이템의 특성을 이용한 간단한 퍼즐도 생겨났다. 이전 까지는 그냥 되는 대로 만들어서 마무리하는 편이라서 이렇게 메터니즘을 소개하고 프로그레스를 표현하는 레벨디자인 작업은 생소하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어느정도 메커니즘 설명을 다 할 정도의 레벨을 만들고 나니 레벨은 거의 10개 정도가 되었다.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뒤늦은 의문이 생긴 것이다.

“돈과 자원을 모아서 아이템 제작하는 것을 RTS의 핵심요소라고 부를수 있나? RTS의 본질은 이런게 아닌것 같은데?”

작업과정에서 이런 질문이 생겼을 때 두 가지 진행 방향이 있다.
1. RTS가 뭐든 상관 없다. 만들던 대로 만든다.
2. RTS의 요소에서 모범답안을 찾아 가능한 범위까지 게임을 수정한다.
3.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고민을 시작한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는 당연히 1번을 택하라고 할것이다.
당돌한 짓 하자고 만들어 놓은 자리에서 뭔 고민을 그리 하느냐고.
하지만, 시간은 늦은 밤. 주위에 1번이라고 말해줄 사람없이 혼자 였던 그 시간에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처음 부터 다시 하는 과정을 택한것이다. 메커니즘을 바꾸고 레벨을 다시 만들고… 그리고, 완성을 하지 못했다.

실수는 반복하지 말하야 하므로, 나는 게임잼이든 루둠데어든 다시는 혼자서 동떨어져서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라도 3번을 택하라는 사람을 없을 테니까.
못만드는건 어쩔수 없어도, 완성은 하고 싶으니까.

 

명명규칙의 중요성

요즘 간단하게 끝날 것이라 착각했던 슈팅 게임을 만들고 있다.

오늘은 플레이 도중에 얻은 경험치를 담는 변수 progressValue가 플레이를 재시작하면 0으로 리셋되는 문제가 있었다.

플레이가 시작되면 기존의 progressValue를 Local Storage에서 불러오는 코드가 있었는데 작동을 안하는 것이다. 불러오는 시점에 문제가 있나 싶어 실행위치를 이리저리 바꿔 봤지만 답은 엉뚱한 곳이 있었다.
글로벌변수 rankProgressValue와 Local Storage의 rankValue를 헷갈려서 rankValue를 불러와야 되는데 rankProgressValue를 불러왔던 것이다. 실수로 만들어지는 버그의 많은 경우가 게임내 변수와 데이터의 이름을 정하는 규칙 즉 naming convention이 부실하거나 지키지 않아서 일어나는데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테드창의 “일흔 두 글자”를 읽고 이름의 신성함과 힘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본적 있다. 이름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정체성, 구분, 체계와 같은 구조적 의미들을 담아내는 역할을 한다. 개발에 있어서도 가장 소중히 해야할 가치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Simple and Silly game

Me : Would you try my game if you have Android Phone?
It’s a just a simple and silly game.
Him : Hey, I think that’s the way a game should be.

지난 주 서울인디즈 모임에서 스페인에서 온 사람과 잠시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바보같은(Silly) 게임이 재밌다는 것은 말이 되는 이야기다.
특히 독립 개발자들은 큰회사 게임에서 못만드는 틈새시장을 중요시 할수 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 큰회사에서는 너무 바보 같아서 안만드는 그런 게임이 그나마 존재감을 어필할수 있는 영역이다.
나는 스스로도 메이져 스케일의 진지한 게임 보다 바보같은 게임을 좋아하고, 그동안 만든 게임들도 대부분 바보 같은 것들이라서 그 사람의 말이 큰 위로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바보 같은 게임이든 진지한 게임이든 만드는 과정에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바보같은 생각을 친구들 끼리 술자리 농담으로 하는데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지만,
그것을 게임 혹은 어플리케이션의 형식으로 구현하는 데는 아무리 간단한 게임이라도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게 되고, 그런 과정속에서 지치는 순간이 오면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아이디어도 정말 바보 처럼 느껴진다.

내가 왜 이짓을 하고 앉았나? 싶은 멘붕에 빠지는 것이다.
특히, 혼자 작업하는 경우에는 그런 멘붕에서 회복하는 일이 쉽지 않다.

개인이나 소규모 팀이 게임을 만들고, 지속가능한 개발싸이클 유지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결국 심리적 문제로 귀결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걸 계속 만들어야 하는가? 하는 목적의식에 대해 의문을 가지면 아이디어도 다 쓸모 없게 되고 기술도, 감각도 자극을 받지 못하고 사그러든다. 특히 요즘 처럼 게임 개발을 둘러싼 자료들이 넘쳐 나는 시절에 기술적인 문제나 기능적인 문제는 이전에 비해 해결될수 있는 방법이 많아졌다. 또한, 기획의 모호성으로 인한 문제도 심리적 문제이지 기술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어쨌든 내 경우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바보 같은 아이디어의 게임은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때 다른 게임들 보다 더욱 쉽게 짐처럼 느껴진다. 빨리 흥분되고 빨리 식어 버리는 것이 꼭 숙주나물 같다.
이걸 나 말고 누가 재미있어나 할까? 이게 돈이 될까? 어떤 사람에겐 상처가 되지 않을까?
그냥, 다들 좋아하는 무난한 소재로 만들지 내가 왜 이런걸 만들고 있지?
이런 생각들이 들면서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보기 조차 두려워 진다.

물론, 몇번 비슷한 상황을 반복해서 겪었고 또 바보 같은 게임이 내가 갈 길이라는 나름의 사명의식(?)이 있기에
이제 그런 일로 많이 주춤하지는 않지만, 절대 사라지지는 않을 제작과정상의 어려움이다.

그래서 simple and silly game이 게임이 가야할 길중 하나라고 들은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방향을 일깨워 주고 용기를 주는 기회로 생각되었다. 설사 그것이 영혼 없는 인사였다고 할지라도 나는 그냥 그렇게 받아 들인다. 그게 내가 멘탈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나를 자극해주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담아 두는 것.

게임 개발의 신이 있다면 나를 비롯해 독립적으로 개발 하시는 모든 분들이 멘탈을 잘 다스려 주시고 중간에 포기 하지 않게 도와 주시기를 바란다.

생활 패턴의 중심

자기가 잘하는 일,
혹은, 자기가 계속 할수 있는 일,
혹은, 하면 느는 일.
그리고, 그 일이 세상에서 어떻게 쓰임을 받는지 아는 지혜.
이것을 중심으로 삶을 디자인해야 한다.
자기가 잘 못하는 일을 부러워 해서 굳이 고집 피우는 것은 어리석다.
누군가 말했다. 어리석은 사람은 힘든일을 해결하려 하고,
현명한 사람은 힘든일을 피해간다고,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는 것은
각자가 자기역할을 충실히 해서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를 사랑하기 위함이다.
스스로 잘 못하는 일까지 억지로 하려는 것은
내가 잘하는 일에 매달려 그 능력을 개발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일이다.

픽셀아트로 계속가도 괜찮은건가?

 

나는 픽셀아트로 게임을 만들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이대로 괜찮은건가? 싶은 생각이 들때가 있다.
21세기에 320*240 해상도에 32색이라니. 너무 뻔뻔스럽잖아?

그러던 중, 유튜브에서 픽셀아트에 관해 이야기 하는 영상 2개를 보았다.

첫번째 영상의 내용은,
“허접한 픽셀을 레트로감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지 마라.”
픽셀이라도 아름다운 게임들은 있다. 하지만, 감성이나 노력도 없는 픽셀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는 일은 모든 인디게임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만드는 일일수도 있다는 비판이다. 이 유튜버는 이 주장을 펼치기 위해 언더테일을 끌고 들어왔다. 이야기 자체는 언더테일의 그래픽이 픽셀아트라고 쳐도 별로라는 것이고 더 나은 완성도의 그래픽이었다면 더 많은 팬들을 모았을것이라는 주장인데 거기에 수많은 언더테일 팬들이 찬반양론을 펼치며 4천개가 넘는 댓글이 채워졌다. 영리한 사람 같다.

두번째 영상의 내용은,
현재를 8비트나 16비트가 아닌 ‘HI비트 시대’라고 명명하고 픽셀아트가 비록 레트로 게임의 스타일을 따라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이전과는 완연히 다른 수준의 시각적 만족을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로든 게임들은 ‘하이퍼라이트드리프터(Hyper Light Drifter)’와 ‘아울보이(Owlboy)’인데 이 두 게임의 경우 모두 수년간의 치열한 제작과정을 이겨내고 엄청난 완성도를 보여준 게임이라 기존의 레트로 기반의 픽셀아트와 방법상으로는 같아도 표현의 수준은 다르다는 이야기. 그리고, 아울보이 제작진의 블로그 글을 인용한다. “사진기가 나왔다고 화가가 그림을 멈추진 않는다. 3D프린터가 나왔다고 조각가가 조각을 멈추진 않는다.” 자신이 하던일을 대체할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자신을 더 업그레이드 시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면 했지 그 일을 멈출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나는 그정도 까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
혼자서 개발하다 보니 속도와 경제성을 위해서 픽셀아트 스타일을 이용하는 것이지 그 스타일의 경계를 새로 넓히는 일에는 욕심을 가져본적이 없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그리기는 하지만 딱히 정해진 스타일을 파고 들어가는 고집은 없는 탓에 픽셀아트는 적당히 편리하게 내용을 담을 수 있는 훌륭한 그릇일 뿐이다.

그래도 위의 의견들을 입맛대로 참고하자면 픽셀아트든 3D이든 어떤 스타일이라도 무성의 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져서 쟝르나 스타일을 소비하기만 한다면 좋은 소리 못들을 것이라는 것이다. 득이 되진 못해도 폐는 끼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