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이머전트내러티브, 그리고 ‘Story Space’

이 글은 전에 올린 Steve Gaynor와 이머전트 내러티브의 추종자들에 대한 반론 형식으로 Tom Cross가 Gamasutra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주로 Gaynor가 선형적 내러티브의 대안적 장치로 주장했던 Story Space에 대한 반론인데 Tom의 주장은 Gaynor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기존 고전적 내러티브형식을 배제하려 한다고 비난 합니다. Story Space는 이야기가 자생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설정과 상호작용이 준비되어 있는 하나의 공간을 말하는 개념인데 Tom Cross는 설사 그 개념이 유효하더라도 거기에 기존의 선형적 내러티브가 포함되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선형적 내러티브를 포용하는 것이 더 풍부한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낼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글은 개인 연구 목적으로 번역하였으며 그 정확도는 보장하지 않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문을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원문 : http://gamasutra.com/php-bin/news_index.php?story=24019

많은 게이머들, 블로거들, 게임 디자이너들은 모두 각자가 바라는 방향으로 게임의 미래를 이야기 한다.

그중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바로 이머전트 내러티브에 관한것이다. 만들어진 스토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플레이 하는 과정이 바로 서사가 되는 그런 게임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Doug Church, Michael Samyn, Steve Gaynor 같은 유명 블로거나 게임디자이너들은 게임에서 스토리 텔링을 하기 위해 쓰이는 고전적인 방법들은 모두 새로운 것으로 교체 되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GDC2000에서 Church는 게임제작자들 모두가 작가적 입장을 내려놓아야 된다고 까지 말했다.

한편, Gaynor와 Samyn arque는 최근의 글에서 비디오 게임은 유저서사가 가능한 독특한 매체로써의 “Story Space(이야기 공간)”이라는 개념을 제시했고 이 것이 Emergent(창발적) 현상을 통해 실현될 것이라 주장했다.

나는 이 주제에 관해 나온 가설들을 하나씩 되짚어 보고자 한다. 다음 글에서는 그들의 약점과 강점, 그리고 좋건 나쁘건 그 잠재력에 대해서도 이야기 할것이다. 마지막 글에서는 오래된 게임의 예를 들어 게임에 있어서의 내러티브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보려 한다.

Church와 Gaynor에게 있어 일반적인 내러티브라는 개념은 낡은 것이다. Gaynor에 따르면 그 것은 비디오 게임이 가야할 바른 방향이 아닌 것이다. 작가에 의해 미리 만들어진 견고한 구조 같은 것들 말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이러한 구식의 내러티브 구조에 집착하는 것은 비디오게임 디자이너들의 창의력을 방해할 뿐이며 결국 게이머들에게도 외면 받을 뿐인 것이다. 우리는 매번 같은 것에는 쉽게 질리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실 최근의 게이머들에게있어 내러티브나 스토리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이 되어 버렸다. 아주 잘만든 게임이라 할지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뻔한 수준의 스토리 텔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Gaynor는 ‘Immersion model of meaning(의미몰입모델)”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이것을 기존의 선형적이고 영화적인 접근 방식과 다른 길이라고 주장한다.

“의미몰입모델은 두가지의 축 위에서 나타난다 : 플레이어의 아바타가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그럴듯하고 살아있으며 내적인 일관성을 가진 게임월드. 그리고, 플레이 과정 자체를 통해 자기의 정체성을 구축해 나갈 수 있는 탄탄한 상호작용이 그것이다.”

이런 개념이 참신한 것일지는 모르나 이는 선형적 내러티브의 해체에 기반하고 있으며 영화적인 연출이라는 허깨비를 가능한한 빨리 떨쳐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내러티브의 정의를 확실히 하지 않으면 무엇이 무엇을 대체할 것인지에 대해서 혼란이 생길 것이고 결국 Immersion model of meaning이란 개념도 그 존재이유가 모호해질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Making things clearer
Gaynor에 따르면 문제는 게임 디자이너들이 영화적인 내러티브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비디오 게임은 이미 이머전트내러티브를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형식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뻔한 영화적 전개와 선형적인 이야기 구조 같은 거죠. 캐릭터 중심의 게임에서 이는 거의 정설이 되어 왔습니다. 의미몰입 모델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디자이너들이 게임을 스토리로 보아서는 안되며 플레이어가 자기의 호흡에 따라 자유롭게 다닐 수 있고 캐릭터와 사물들로 가득찬 그런 장소를 만든다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의미몰입모델과 내러티브에 관해 이 정의가 가지고 있는 문제는 우리로 하여금 내러티브란 항상 정해져 있는 형식이 있고 의도된 프레임과 작가적 호흡, 예상가능한 이벤트의 흐름이라고 보기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개념을 어떤 사람기준으로 해야할지에 대해서도 명확하지 않다. 또, 내러티브는 선형적일 필요가 없다. 사실, 개인적 의견으로는 비디오게임 안에서 내러티브가 제대로 다루진다면 내러티브는 각자가 독립적인 다중 플롯이 되어야 한다.

비디오게임이라는 매체에서 내러티브는 자신만의 목표를 가진 다양한 캐릭터들에 의해 역동적으로 구현된다. West wood의 Blade Runner 같은 게임의 시스템을 알아보자. 캐릭터들은 플레이어와 독립적으로 움직이며 시뮬레이션 상태를 유지한다. 이런 와중에 플레이어가 그 캐릭터들에게 개입을 할 때만 그들은 플레이어에게 반응한다.

이 게임이 완전하거나 매끄러운 시뮬레이션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캐릭터들은 여전히 플레이어가 말을 걸어주기는 기다리고 있으며 플레이어에 의해 어떤 아젠다가 발생되지 않으면 더이상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는다. 그렇긴 하지만 Blade Runner에서 스스로 움직이는 캐릭터 시스템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볼수 있으며 다른 게임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As long as Androids Pretend to Dream
내러티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인 이벤트를 위한 시스템이며 각각 이벤트는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독자, 관객 혹은 플레이어는 이 이벤트들을 경험하고 그들이 각각 어떤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이 부분에 대해 Gaynor의 블로그에서 Clint Hocking은 EM Foster를 인용했었다.

“‘왕이 죽자 왕비도 죽었다’가 스토리라면 ‘왕이 죽자 왕비는 슬픔에 못이겨 죽었다’는 플롯이다.”

이처럼 내러티브의 문제는 이벤트의 연결에 의미가 부여 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Hocking은 이 지점을 통해 플롯에 관한 Peter Brook의 주장을 가져왔다. 플롯은 고정되거나 구체화된 종류의 개념이 아니며 우리가 흔히 읽거나 보는 ‘이야기’와는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플롯은 내러티브의 디자인이자 의도이며 조금씩 누적되어 가는 의미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조이다.” (Brooks12)

내러티브는 각각의 존재에 함축되고 연결되어진 의미의 총합이다. 독자들이나 관객들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기도 하면서 또한 내러티브가 결론으로 가는 과정을 따라가는데도 흥미를 느낀다. 내러티브는 선형적일 필요가 없다. 하나의 게임에서 다양한 내러티브의 진행선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해서 그게 잘못된 것도 아니다.

스토리텔링을 위한 새로운 방법으로써 스토리공간에서 자생적으로 발생되는 그런 종류의 내러티브를 찾기 위한 원래의 의도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내러티브와 선형성에 대한 보다 정확한 개념과 함께 미래의 게임 내러티브가 가야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더 넓은 개념이 필요하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Gaynor의 이머전트 내러티브를 위한 대안은 이미 존재한다.

이머전트내러티브에 미래는 단지 Story Space로써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러티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발전 시키기 위한 방향을 유지하는데 있다. 나는 내러티브가 Story Space에서 발생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와 다른 형태로도 공존 하리라고 믿는다. 또한 그 내러티브와 Story Space의 공존이 멋진 이머전트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Story Space를 통해 덜 형식적이고 더 자유로와지기 위한 것이 내러티브의 목적 자체는 아닌 것이다.

나는 또한 내러티브의 도움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스토리텔링의 어떤 측면이 존재하며 이는 Story Space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UCC와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하려면 ‘이머전트내러티브’와 ‘Story Space’의 개념에 대해 완전히 이해해야 하고 그전에 ‘내러티브’가 무엇이며 앞의 두가지 개념과 어떻게 다른지를 확인해야 한다.

How Far can the Story Space Take Us?
Gaynor가 말한 Story Space이라는 개념은 보다 유연하고 플레이어의 결정에 대한 반응이 원활하며 그럼으로써 게임과 플레이어를 연결시키는 것이다. Story Space 내러티브의 장점은 모두 가지고 고리타분한 요소는 빼려고 하는 의도를 가진다. 그런 구조를 통해 디자이너에 의해 만들어지는 스토리보다 플레이어들이 직접 스토리를 만들게 하기 위해서이다.

Story Space에서 디자이너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유연하고 반응성이 좋은 NPC와 환경들을 통해서 가능한한 넓고 깊은 상호작용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플레이어는 그 환경을 바탕으로 흔한 나뭇가지branch 형식의 분기 같은 것 대신에 훨씬 의미있는 스토리를 만들수 있게된다.

Gaynor를 위한 스토리 공간은 특정한 게임디자인이 제공해줄 수 있는 가능성이다.

“가상의 컨텐츠, 캐릭터, 배경스토리 — 이런것들은 플레이어의 행동을 선택 할 수 있게 해주는 상황과 맥락을 제공해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이런 것들은 말그대로 배경이 되어주는 컨텐츠 이다. 고전적 개념에서의 선형적 내러티브가 아닌 것이다. 게임월드의 창조자는 가상의 세계를 그럴듯하게 만들어 독자들을 끌어 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게임월드 그자체와 그안에 있는 인물들을 통해서 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게임의 가치는 스토리텔링할 수 있는 능력에서 찾아져야하는 것이 아니라 스토리메이킹의 잠재력에 깃들어 있다고 봐야한다.”

Gaynor 에게는 상호연결될수있는 설정, 인물, 역사들로 이루어진 다양한 흐름을 따르는 세계가 “가상의 컨텐츠”인 것이다. 이 개념은 구조화 되어 있지 않고 제한되어 있지 않으며 선형적이지도 않아 독자적인 스토리메이킹이 가능하다는 조건이 지켜지는 경우라면 가능하다. 하지만, 내 생각에 Gaynor가 이 요소들을 재미있는 게임플레이 경험을 만들기 위한 개념으로 예를 들었다면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그의 내러티브와 스토리메이킹에 대한 정의는 설명이 부족하거나 또 일부는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다는 문제가 있다.

미래에는 유저가 스스로 스토리를 만드는 도구를 줄수 있을 것이라는 말은 참 듣기 좋다. 게다가, 비디오게임은 이미 만들어진 스토리를 전달하는데 좋은 매체가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내러티브나 Story Space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없이는 내러티브의 권한을 작가에게서 독자에게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에 대해 혼란스럽기만 할 것이다. 멋진 수사는 단지 수사일 뿐이며 그것만 가지고는 게임이 현재 무엇을 하고 있고 미래에 어떤 길을 가야할 지에 대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머전트내러티브나 작가의 제어권 같은 개념이 이 주장에서 중요한 요소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제어권은 이 놀라운 경험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 작가들이 포기해야 하는 권리이다. Gaynor는 이 권리를 포기한 후 그럴듯하고 깊이 있으며 규칙으로 이루어진 월드가 만들어진다면 내러티브의 족쇄는 풀리고 이미전트내러티브가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것은 더 투명하고 은밀하며 뻔하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Story Space에서 플레이어가 만들어 내는 새로운 스토리와 내러티브가 바로 이 논의에서 핵심인 이머전트내러티브이다. 이머전트내러티브는 플레이어가 가상의 게임환경에서 얻는 자극들을 통해 만들게 되는 이야기나 혹은 개념이다. 이런 행동과 반응을 통해 플레이어는 그들만의 이야기, 즉 이머전트 내러티브를 만들어 내게 된다는 이야기다.

Assumptions and Assertions
만약 컨텐츠가 유저로 부터 발생된다면 디자이너는 스스로 전달한 도구를 통해 유저가 스토리를 만들도록 놔두고 무대뒤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Gaynor가 말한 이상적 상황이다.

“최선의 비디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작가의 제어권을 양보하고 경험의 장소를 화면에서 개인의 손과 마음으로 옮겨 놓는 것이다. 게임 플레이는 그렇게 플레이어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게임디자이너 최대의 열망은 스테이지를 설정하는데서 그쳐야 한다.”

이것은 훌륭한 목표지만 Gaynor가 여기에 비디오 게임 전체를 포함시킨다면 틀린 말이다. 모든 비디오 게임이 작가적 제어권의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NPC들이 사는 가상세계를 만드는 환상을 제공하기 위해 다중 플롯이나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내러티브들이 하나의 복잡한 게임으로 연결되어 나가는 것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게임 디자이너는 각각이 나름의 목표와 이유로 거기 존재하는 이런 무수한 캐릭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씬을 만들기 위해 세심하게 쓰여진 스크립트나 연출된 NPC들이 환영을 깨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환상을 만들기 위해 쓰여질 수 있는 또하나의 내러티브 재료인 것이다. 이것은 많은 게임들이 추구했지만 가까이라도 갔던 게임은 매우 소수였고, 도달한 게임은 하나도 없는 그런 종류의 이상이다. 현재수준에서 제 아무리 기대작이라 해도 지금 논하고 있는 수준의 내러티브의 희망에 도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들이 실패하는 이유는 그들이 Gaynor가 말하는 새로운 스토리텔링 방식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Gaynor가 강조하는 것이 스토리텔링이 아니기 때문이며 그것이 비디오게임 내러티브의 유일한 미래도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바로 그것이 Gaynor가 원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많은 사람들이 자주 그러하듯 Gaynor는 내러티브를 Story Space로 대체되어야할 낡은 개념으로 치부했기에 비디오게임 내러티브의 원래 의미를 제대로 보는데 실패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해 Story Space가 내러티브의 미래는 아니다. Story Space 개념은 실현될 수 있지만 그 개념과 고전적 내러티브 개념이 공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쓸데없는 순혈주의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자각능력이 있는 게이머들에게 판단을 맡기려 한다. Story Space같은 개념에 연연하지 않는 게임 내러티브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어야 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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